겉보기에 이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는 듯 하지만, 아니다. 인류역사의 거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남자가 이룬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은 여자가 지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자가 이 세상을 ‘조정’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서태후는 청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악녀로 평가받는 여인이다. 서태후는 같은 음식을 세 숟가락 이상 먹지 않았고, 한 끼에 무려 128가지의 음식을 먹어 중국 농민의 약 1년치에 해당하는 식사를 한 번에 해결했다. 옷은 3천여 상자 , 2만여 벌이나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었고, 보석에 대한 애착이 커 비취와 진주로 만든 액서사리로 치장했다. 서태후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새똥을 원료로 하는 옥용산이라는 화장품을 애용하는가 하면, 산모들을 데려와 얼굴을 가리게 하고 모유를 직접 마시기도 했다. 또한 머리 치장에 유독 신경을 써서 궁녀가 빗질 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매질을 할 만큼 탈모에 예민했다. 젊고 매력적인 남자들을 수시로 궁안에 불러들여 은밀한 밤을 즐겼다는 스캔들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서태후의 사치를 위하여 청 제국은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전쟁으로 소실된 궁중 별장인 이화원을 복원하는 데만 나라 1년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서태후는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애인 영록을 버리면서까지 궁녀가 되어 16세에 자금성에 들어간다. 그 이후 함풍제 주변 환관들의 환심을 샀고, 경극을 좋아하던 황제가 우연찮게 서태후의 노래를 듣게 되는데, 이를 통해 궁녀에서 귀인을 거쳐 귀비에 오르게 된다. 함풍제에게는 동태후라 불리는 자안태후와 서태후라 불리는 자희태후가 있었다. 성품이 고왔던 동태후는 서태후를 동생처럼 예뻐했다. 이미 서태후의 권력욕을 안 함풍제는 동태후에게 유언으로 서태후를 귀양보내 사약을 먹여 죽이라고 했지만 마음 약한 동태후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의문의 사건으로 동태후가 죽은 후 서태후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환관을 시켜 동치제를 성밖의 환락가에 드나들게 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했다. 그러다가 동치제가 몹쓸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서태후는 이 병을 치료해주지 않아 결국 죽게 만든다. 또 서태후는 동치제의 아들을 임신하고 있던 황후를 감금한 후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아 황후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황후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권력을 넘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향한 서태후의 행진은 계속 이어진다. 서태후는 동치제를 이을 황제로 함풍제의 동생과 자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난 4살 아들 광서제를 골랐다. 그가 여러 성인 황족들을 물리치고 황제가 된 것은 서태후가 계속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성인이 된 광서제는 직접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하여 청일전쟁에서 진 후 개혁정치를 시도하지만, 서태후는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반대한다. 이에 광서제는 당시 신흥 군벌로 뜨고 있던 위안스카이를 끌어들여 개혁을 시도하지만 위안스카이는 겉으로 동조하는 척하면서 서태후의 애인 영록을 찾아가 스파이처럼 광서제의 모든 계획을 낱낱이 고발했다. 서태후는 광서제를 자금성 영대에 유폐시키고 그를 도와 개혁에 나섰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했다. 10년간 유폐되어 있던 광서제는 위안스카이가 보낸 독약을 보약인줄 알고 먹어 38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서태후는 광서제 동생의 세 살배기 아들을 다음 황제로 지목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이다. 서태후는 아마 황제가 어린 것을 빌미삼아 동치제와 광서제처럼 또 수렴청정을 이어가려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어떤 정적도 두렵지 않고 외세의 압박에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서태후도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계속된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과식하여 이질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서태후는 살아 생전 자신이 그토록 핍박했던 조카인 광서제가 죽은 다음 날에 숨을 거둔다. 그녀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처럼 불행한 여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여자가 정치를 못하게 하라.” 이상한 유언이었다. 자기 자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을 지배한 실질적 황제가 아니었던가?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장악했던 서태후. 그녀의 권력욕은 ‘사람이 이렇게도 잔인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만큼 악독했다. 자신의 아들과 뱃속에 있던 손자까지 계획적으로 죽인 모습은 인간의 추악한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서태후를 평가할 때 으레 등장하는 수식어가 있다. ‘중국 최고의 악녀’ ‘청나라 멸망의 원흉’ ‘권력욕에 눈멀어 자식까지 죽인 희대의 살인마’… 한 여인의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결국 한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 한 여인으로 인해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어떤 여성 작가가 이렇게 썼다. “여자들이 무섭다. 나라를 깡그리 주무르고 완전히 망치니!” 한 여인으로 인해 한국이 온통 시끄럽다. ‘국정농단’이란 말이 들린다. 한때는 온나라를 뒤흔든 비극의 이름이었지만, 다시 일상어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 익숙함이 무섭다. 권력이 사적으로 움직이고, 국정이 비공식라인에서 굴러가는 현실을 국민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야 말로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지점이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지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