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자 골목 찻길에서도 낙엽이 바람에 실려 춤을 춘다. 앞서 달리는 차가 일으킨 돌개바람에, 길 위에 나뒹굴던 잎들이 다시 공중으로 솟구친다. 아씨마켓점에 들렀다가 메도우 처치 로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길, 풀밭 한 귀퉁이가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풀들이 꼬리를 흔드는 듯 살랑거린다. “어, 저거 강아지풀 아니야!”
잊고 지내던 익숙한 존재를 오랜만에 만난 기쁨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래전에 헤어졌던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충청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강아지풀이 낯설지 않다. 차창 밖에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며 일단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장본 것을 내려놓고는, 다시 혼자 차를 몰아 강아지풀이 있던 그 길로 향했다. 우리 콘도 정원은 계절이 바뀌어 찬란했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겨울 꽃 팬지가 심어져 있었다. 노랑, 흰색, 자주빛 꽃잎들은 찬바람이 시원하다는 듯 고요하게 미소 짓는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흔들며 지나가는 계절을 찬양한다.
강아지풀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니 차도 옆으로는 사람들의 걷는 포장도로가, 그 옆으로는 잘 손질된 잔디밭이 이어진다. 잔디밭 끝에는 주택단지 담장이 서 있고, 담장이 끊어지는 자리에 작은 빈터가 있다. 그 빈터에는 강아지풀이 수줍게 몸집을 낮춘 채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강아지풀은 잡초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고 초라한 풀이다. 잎도 꽃도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다. 다만 가느다란 줄기 끝에 사람 손가락만 한 털송이가 달려 있을 뿐. 그 꼬리 같은 모습이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 하여 ‘강아지풀’이라 불린다. 서양에서는 ‘초록 여우꼬리’라 한다니, 이름만큼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도 상상의 결이 닿아 있다.
소, 양, 염소, 토끼들이 즐겨 뜯어먹는 풀도 이 강아지풀이다. 논과 밭두렁, 길가 어디에나 흔한 풀. 어린 시절 우리는 강아지풀을 뜯어 줄기 가운데를 갈라 코에 붙여 콧수염 놀이를 했고, 친구의 목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파리나 모기인 줄 알고 자기 목을 탁 치며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가난하고 소박한 시절의 장난감이던 강아지풀이, 이 늙은 나이에 미국 땅에서 다시 눈앞에 흔들리고 있으니, 잊고 있던 옛 친구가 찾아온 듯 반가웠다.
강아지풀은 일년생 식물이다. 한 해를 살고 한 해를 끝낸다. 큰 나무나 키 큰 풀들이 우거진 곳에서는 햇빛을 받지 못해 밀려나지만, 밭두렁이나 빈터, 척박한 땅에서는 오히려 더 빠르게 싹을 틔우고, 서둘러 자라 씨를 만들고 흩뿌리고는 조용히 스러진다. 그런 풀이 충청도 산골의 기억을 넘어서 미국 조지아의 우리 집 가까이에서 다시 마주하니, 반갑다.
연약하고 작고, 겨울이면 예외 없이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 기름진 땅에서는 늘 밀려나야 하는 존재. 그런데도 이 풀은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뒤바뀌고 먹이사슬의 변수들이 무수한 세상에서, 지구 곳곳에 퍼져 끈질기게 살아간다.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믿었는데, 약한 강아지풀의 생존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지구의 사계절에 정직하게 몸을 맞추는 태도일 것이다. 봄이면 고요히 싹트고, 여름이면 재빠르게 자라며, 가을이면 온 힘을 다해 씨를 만들고 뿌리고, 겨울이면 담백하게 사라지는 순환. 바람이 불면 바람과 더불어 춤을 추고 씨도 멀리 날리며, 단순하면서도 완전한 순응이 바로 생존의 지혜인지 모른다.
뜯어온 강아지풀을 책상에 놓고 보니 아직 떨어지지 않은 씨 몇 개가 보인다. 휴대폰으로 확대해 보니 갈고리처럼 생긴 껍질이 있어, 스치는 동물 털에 붙어 멀리 가도록 설계된 작은 장치가 숨어 있었다. 강아지풀의 가느다란 줄기는 폭풍에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휘며,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낸다. 그 작은 풀이 어떻게 그런 지혜를 품게 되었을까, 문득 경외감마저 든다.
손에 쥔 강아지풀을 살짝 흔들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다: “나는 연약하고 크지도 않지만 어디서든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의 역사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무궁히 살아갈 거예요. 나는 딱 일 년만 살지만, 해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이어가고 있어요. 나 같은 미천한 풀도 많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척박한 땅에서도 탄소를 줄이며 산소를 늘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 있어요. 사는 것은 그저 기적이고 은혜예요. 바람이 불면 바람과 함께 춤을 추어요, 광풍이 불어도 버티지 않고 휘기에 꺾이지 않고, 씨들을 광풍에 멀리 퍼트리지요. 흔들리는 내 모습이 주인이신 당신을 만나 꼬리치는 강아지 같은 가요? 사는 것은 아름다워요.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