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최소 250달러(약 35만원)의 비자 발급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불법 이민 통제를 위한 정책으로 외국인이 문제없이 미국을 떠날 때 돌려주는 보증금 성격이지만, 환급 절차가 복잡해 사실상의 추가 수수료가 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2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미 국토안보부는 ‘비자 진실성 수수료(visa integrity fee)’를 신설해 유학, 취업 등 비(非)이민 목적으로 미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비자 발급 과정에서 부과할 방침이다. 관광·상용 비자(B-1/B-2), 유학생 비자(F/M), 취업 비자(H-1B/H-4), 교환방문 비자 (J) 등 비이민 비자가 필요한 대부분의 방문객에 적용된다.
수수료는 매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인상되며 비자 발급이 승인되면 부과될 예정이다. 불법 이민 통제와 재정 확보를 위해 지난 4일부터 시행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에 따른 조치다.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토안보부는 “조속한 시행을 위해 부처 간 조율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수수료란 이름이 붙었지만 체류 기간에 불법 취업을 하지 않고, 비자 유효기간을 5일 이상 초과하지 않은 채 출국하면 환급받을 수 있다. 이민 전문 변호사인 스티븐 브라운은 CNN에 “보통 비자 수수료는 심사 또는 발급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받는 것인데 이번 수수료는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돌려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보증금’”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자 유효기간 만료 후 신청을 통해 환급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라운 변호사는 “환급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환급 절차의 복잡성 때문에 실제 환급을 받는 비율이 낮을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 수수료를 통해 향후 10년간(2025∼2034년) 약 289억 달러(약 40조원)의 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수수료는 기존에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외국인 입출국 기록 수수료(I-94)와 별개로 부과된다. OBBBA는 I-94 수수료도 현행 6달러(약 8300원)에서 24달러(약 3만3000원)로 4배 올렸다.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기존보다 최소 268달러(약 37만원)를 추가로 내야 하는 셈이다.
다만 전자여행허가시스템(ESTA)을 통해 무비자로 입국하는 단기 관광객은 비자 진실성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비자 발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OBBBA에 따라 ESTA 수수료도 기존 21달러(약 2만9000원)에서 34달러(4만8000원)로 오른다.
진실성 수수료 도입에 대해 미 관광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에릭 핸슨 미국여행협회 부대표는 “새로운 비자 수수료는 해외 방문객에게 불필요한 재정적 장벽을 더하는 ‘거대한 퇴보’”라며 “환급이 가능하다고 해도 절차와 비용 때문에 미국 방문객이 줄어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