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의 벽돌공장에서 ‘지게차 가혹행위’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새로운 일터를 찾지 못할 경우 강제 출국당할 처지에 놓였다.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기존 사업장 퇴사 후 3개월 이내에 새 근무처를 찾지 못하면 체류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25일 “직장 동료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스리랑카 국적 A씨(31)가 지난 23일 제출한 ‘사업장 변경 신청서’를 이튿날 사업주가 동의함에 따라 새로운 근무처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월 26일 나주시 한 벽돌공장에서 동료 근로자들에 의해 벽돌화물에 묶인 채 지게차로 들어 올려지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A씨는 사건 당시 지게차에 5분을 실려 다니다 내려온 후 고통을 호소하며 수차례 헛구역질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는 “(사건 당시)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라며 “평소에도 회사 부장님 등이 욕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지게차에 묶인 후) 마음이 너무 다쳤다. 너무 힘들어서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A씨는 현재 고용허가제 체류 자격으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E-9 비자를 받고 입국한 A씨는 한국에서 최장 3년간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상 사업장 변경 신청 후 90일 안에 근무처 변경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 출국 조치된다.
지난 24일 전남 나주시청 앞에서 인권단체가 이주노동자 인권유린 사건 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지난 2월 26일 낮 12시쯤 나주의 한 벽돌공장에서
근무하던 스리랑카 국적 A씨(31)가 벽돌 화물에 결박돼 지게차로 들어올려지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길 때도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하는 제약도 있다. 현행법상 수도권, 충청권, 전라·제주권 등 일정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새 업장을 찾지 못하고 국내에 머무를 경우엔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며, 적발 시 강제로 출국당한다.
A씨의 가혹행위 피해를 공개한 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측은 “A씨가 폭언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려 퇴사했는데 다시 강제출국이라는 위기에 놓인 것”이라며 “사업장 이동의 실질적 자유와 노동허가제 도입 등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당국과 경찰은 A씨에 대한 가혹행위가 벌어진 업체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이날 오전 업체 방문조사를 시작으로 기획감독에 나섰다. 광주노동청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직장 내 괴롭힘, 임금 체불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확보한 영상에는 이곳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A씨를 비닐로 벽돌에 묶어 지게차로 옮기는 모습과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다른 노동자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해당 업체에 대한 고용허가권 취소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고용허가제는 관련법에 따라 근무조건 위반 또는 임금체불 등이 발생할 경우 고용허가가 취소 및 제한된다. 노동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노동 관련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제한을 받게 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체에 대한 기획감독 과정에서 임금체불을 비롯한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기소의견으로 송치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가혹행위가 담긴 영상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A씨에 대해 피해자 조사를 벌인 후 지게차 운전자를 비롯한 벽돌공장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했으며, 이 가운데 50대 한국인 B씨를 특수폭행·특수감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가혹행위 영상을 확인한 즉시 내사에 착수한 상태”라며 “문제의 영상 외에도 폭언 등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추가 입건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황희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