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는 애틀랜타 한인들에게 언제나 특별한 존재이다. 비행기표 없이도 떠날 수 있는, 그러나 분명히 ‘다른 세계’로 느껴지는 곳. 차 한 대에 가족을 태우고 몇 시간만 남쪽으로 달리면 야자수가 흔들리는 해안도로가 나타나고, 따뜻한 바닷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계절이 한 발 앞서가는 그 땅에서는 봄이 오지 않았어도 이미 여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플로리다는 단순한 지리적 목적지가 아니라, 이민 생활의 팽팽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하나의 의식(儀式)인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익숙해지기 전, 파나마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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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년 1월 눈발이 휘날리는 이탈리아 북부 산지 카노사성 앞에 한 젊은이가 사흘째 맨발로 서 있었다. 옷차림은 수도자처럼 얇고 검소했고 신발조차 신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던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였다. 그는 자신의 주교 임명권을 지키려고 교황에게 대항하며 결기를 보이던 젊은 권력자였다. 하지만 교황에게 파문당해 황제의 자리와 생명까지 위협을 받게 되자 결국 교황의 용서를 구하려고 치욕을 무릅쓰고 추위 속에 떨며 서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 아니었다. 교황은 왕을 파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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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환자에게 신발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다. 자칫하면 작은 상처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의료 장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적절한 신발 착용을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의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파트B(Medicare Part B)는 당뇨 환자의 발 건강을 위해 매년 당뇨 전용 신발과 인솔(깔창)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원 내용은 연 1회 기준으로 당뇨 전용 신발 1켤레와 맞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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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만 명이 몰려드는 대규모 코리안 페스티벌 현장을 누비다 보면,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타민족의 뜨거운 관심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제 한식은 더 이상 한인 사회만의 음식이 아니다. 세계인이 즐기고, 찾고, 경험하고 싶어 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 자산이 되었다. 필자는 2019년 9월, 애틀랜타에서 제1회 K-BBQ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약 3만 명이 참여하는 놀라운 성과를 직접 목격했다. 이후 팬데믹으로 그 흐름이 일시 주춤했으나, 지금 다시 애틀랜타 코리안 페스티벌로 확대 지속되면서 매년 1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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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3주 동안 혼자 한국에 갔다. 장모님 연세가 많아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몰라 다녀오겠다고 했다. 긴 비행 시간과 시차가 힘들어 나는 더 이상 한국에 가지 않기로 했기에, 아내 혼자 떠났다. 아내 없이 혼자 집에 있으니 물론 불편 하지만 몇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혼자 있으니 무엇보다 식사는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식사는 평소에도 내가 내 먹을 것을 준비하는 편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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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23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인 영월땅 청령포에 새로운 유배자가 온다. 수염이 허연 정승 대가가 오리라고 기대했던 촌장 엄흥도는 솜털이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윗마을 촌장은 귀향이 풀려 한양으로 간 영의정 덕에 마을이 배곯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왕위에서 쫒겨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새파란 아이라니, 엄흥도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어린 왕은 죽을 생각만 한다. 그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엄흥도의 인내는 한계에 달한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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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없는 무덤 앞 낡은 돌비석 모서리 닳아있다 부서지고 깎인 흔적 위로 푸른 이끼가 낮은 음을 켠다 악보 밖의 음처럼 누군가의 타다 남은 긴 여정이 잿빛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자리 흙 속의 뼈마디처럼 햇살보다 먼저 눈길에 닿고 싶었던 이름 잃은 것들의 손짓 침묵을 위한 하루의 깜박임이 끝없이 퇴적된 기억 흘리며 아무도 듣지 않는 깊은 곳에서 피었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피어나는 숨결 맞닿으며 말 없는 잔빛이 하루의 서정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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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열 살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던 그 날, 나는 고향을 떠났지만 금강산만은 내 안에 남겨 두고 온 듯하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금강산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가슴을 파고들 때면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러면 멀리서 바람처럼 한 여인이 걸어온다. 세월을 초월한 맑고도 서늘한 눈빛. 조선의 명기 황진이, 그녀가 다시 내 곁에 선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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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문제는 확산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식당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 구조는 여전히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시스템은 한국인 셰프 중심의 공급 구조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간단하다.수요는 글로벌인데, 공급은 로컬에 묶여 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한식은 일정 수준에서 성장 정체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전문 인력에 의해 왜곡된 ’유사 한식‘이 확산되면서 K-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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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백세 가까이 건강하게 사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자주 만나는 미스터 영(Mr. Young)은 올해 아흔다섯인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백세를 훌쩍 넘겨도 건강하게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위이지만, 나보다 더 젊어 보인다. 여러 번 체육관에서 마주치며 그는 타이완에서 온 사람이고 이름이 조지 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운동을 하다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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